설날 한복 문화, 왜 입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설날 아침만 되면 꼭 누가 그 말을 합니다.
“떡국 먹었어? 그럼 한 살 더 먹었네.”
어릴 때는 이 말이 너무 얄미웠어요. 국 한 그릇 먹는다고 내 인생이 갑자기 바뀌는 것도 아닌데,
왜 어른들은 그걸 그렇게 확정적으로 말하는지. 왠지 손해 보는 기분도 들고요.
그런데요, 조금 커서 다시 설날 아침을 맞아보면 그 말이 이상하게 다르게 들립니다. 똑같은 문장인데, 목소리의 온도도 다르게 느껴지고,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마음 같은 것도 보이는 것 같고요. 그러다 어느 날은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 “올해도 잘 건너가 보자” 같은 인사로 들리기도 합니다.
설날 아침은요, 집이 같은 집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평소엔 누가 먼저 일어나든 말든 각자 리듬대로 살잖아요. 그런데 설날엔 이상하게 다들 조금씩 일찍 일어납니다. 그게 꼭 ‘부지런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뭔가… 오늘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있죠. 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가 들리고, 냄비 뚜껑 여닫는 소리가 나고, 바닥에서 슬리퍼 끄는 소리가 평소보다 길게 길게 들립니다. 그 소리만 들어도 아, 설이구나 싶어요.
그때부터 집은 ‘생활’보다 ‘의식’에 가까워집니다. 거실에 사람이 모이는 방식도 바뀌고, 말수도 조금 줄었다가 갑자기 늘었다가, 서로가 서로를 살피는 눈치 같은 게 생깁니다.
저는 이때 떡국이 등장하는 게 참 자연스럽다고 느껴요. 설날의 공기가 이미 “오늘은 평소랑 달라”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그 공기를 딱 한 번 더 확정해 줄 ‘무언가’가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그 역할을 떡국이 해줍니다. 말도 없고, 설명도 없는데요. 한 숟갈 먹으면 끝이에요. “응, 새해 시작.”
떡국이 특별한 이유를 이야기할 때, 상징 얘기를 많이 하죠. 흰색은 깨끗함, 가래떡은 길게 이어지는 복, 동전처럼 썰면 재물… 그런 얘기 다 좋은데요. 저는 가끔 그런 설명이 너무 ‘정답’처럼 들릴 때가 있더라고요.
설날의 음식은 멋있어서 살아남았다기보다, 현실에서 너무 잘 맞아서 살아남은 경우가 많습니다. 설날은 겨울이고, 사람은 모이고, 부엌은 바빠지고, 한 번에 많이 끓여서 나눠 먹어야 하는 날입니다. 그런 날에는 국만큼 든든한 방식이 없죠.
떡은 또 어때요. 쌀로 만들고, 저장해 두었다가 쓸 수 있고,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손이 빠르기도 하고, 국으로 끓이면 양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고요. “가족이 모이는 날”이라는 조건에 딱 맞는 음식인 거예요.
그래서 “떡국 먹어야 나이 먹는다”는 말은 엄청난 철학이 먼저 있어서 나온 말이라기보다, 설날을 살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농담이자 습관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습관이 오래 살아남으면, 어느 순간 그게 문화가 되죠.
떡국을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색이에요. 하얗죠. 뽀얗고, 깨끗하고, 약간 조용한 색. 설날 아침의 분위기랑 묘하게 닮았습니다.
하얀색이 ‘깨끗함’ 같은 의미를 가진 건 맞아요. 그런데 그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하얀색은 “처음부터 다시” 같은 마음을 꺼내게 하거든요. 지난 한 해에 마음이 엉망이었던 사람도, 설날 아침 떡국 앞에서는 잠깐 멈춥니다. “그래도 오늘은 새로 시작하는 날이니까…” 같은 마음이 올라와요.
가래떡은 길게 뽑잖아요. 저는 어릴 땐 그냥 ‘긴 떡’이었는데, 나중에는 그 길이가 왠지 ‘시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이 집이 이 시간을 계속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 큰 사고 없이, 큰 이별 없이, 큰 아픔 없이 다음 설날도 같이 맞이하자는 마음. 그런 게 조용히 들어 있는 느낌이요.
어릴 때는 한 살 더 먹는 게 좋았어요. 뭐가 좋아서 좋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그냥 좋았어요. 내 몸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숫자가 바뀌는 게 그렇게 신났습니다.
“너 이제 몇 살이야?” 물으면 괜히 큰소리로 대답하고, “그럼 너도 이제 어른이네~” 하면 어른 흉내 내고 싶고. 그때의 나이는 ‘책임’이 아니라 ‘기대’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떡국 먹어야 나이 먹지”가 귀엽게 들렸던 거죠. 떡국을 먹으면 뭔가 자라는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요. “한 살 더”라는 말이 가볍지 않게 들립니다. 진짜 신기한 변화죠. 똑같은 문장인데, 내 마음이 달라지면 소리도 달라집니다.
한 살 더 먹는다는 건, 한 해를 또 버텼다는 뜻이기도 하고, 한 해를 또 지나쳤다는 뜻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겐 한 해를 또 잃었다는 뜻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 말이 너무 슬프게 들리면… 그건 요즘이 많이 힘들었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떡국 먹으면 한 살”이라는 말은 농담처럼 툭 던져져도, 받는 사람 마음에 따라 무게가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웃고, 어떤 사람은 잠깐 조용해지고, 어떤 사람은 괜히 “에이, 안 먹을래” 하고 농담으로 넘기죠.
저는 그래서 이 말이 요즘 더 오래 살아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엔 ‘크는 기쁨’이 강했다면, 요즘은 ‘시간을 받아들이는 연습’ 같은 쪽으로 의미가 이동해버렸거든요. 떡국은 새해를 축하하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새해를 “받아들이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설날 아침의 장면을 떠올려보면, 떡국은 혼자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보통 그 앞에는 세배가 있고, 덕담이 있고, 그런 말들이 지나간 뒤에 떡국이 식탁에 올라옵니다.
세배는 몸으로 하는 인사고, 덕담은 말로 하는 인사죠. 그런데 인사는 생각보다 빨리 지나갑니다. 허리 숙이고, 한마디 하고, 웃고, 끝. 그때 떡국이 등장하면, 그 인사가 “오늘 하루의 분위기”로 굳어집니다.
그래서 어떤 집은 떡국을 먹고 나서야 진짜 설날이 시작된 것처럼 느끼기도 해요. 그 전까지는 준비, 이동, 긴장, 눈치… 이런 것들이 섞여 있다가, 떡국 한 그릇 먹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풀립니다. “그래, 됐다. 시작하자.”
아이들은 떡국을 먹고 나면 꼭 묻습니다. “나 이제 몇 살이야?” 그 질문이 귀엽기도 하지만, 저는 그게 되게 솔직한 질문 같아요. 아이는 자기가 자라는 게 신기한 거죠. 이 몸이 조금 더 커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고, 어른들이 자기 말을 조금 더 들어주는 것 같고.
어른은 떡국을 먹고 나서 말이 줄어들 때가 있습니다. (항상 그런 건 아니고요. 어른 중에는 더 말 많아지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조용해지는 어른이 있다면, 그건 대체로 머릿속에서 한 해가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건강, 돈, 일, 가족, 부모님, 아이들… 설날 아침에 그 생각들이 한 번에 몰려오기도 하거든요.
명절이 다 좋기만 한 건 아니잖아요. 솔직히 힘든 집도 많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질문이 싫은 사람도 있고, 이동이 버거운 사람도 있고, “내가 왜 이걸 다 해야 하지” 싶은 사람도 있고요.
그래도, 그런 집에서도 떡국은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크게 차리지 않아도 떡국은 끓이죠. 이유가 뭘까요. 떡국은 ‘완벽한 명절’을 만드는 음식이 아니라, ‘그래도 오늘은 설날’이라고 말해주는 음식이기 때문 아닐까요.
“전통은 이렇게 해야 해요” 같은 말이 명절을 더 힘들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떡국만큼은 조금 더 자유로워도 된다고 생각해요. 설날의 본질은 ‘폼’이 아니라 ‘마음’에 더 가깝거든요.
설날에 떡국을 먹는다는 건, 꼭 전통을 완벽히 재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냥 “나는 오늘을 이렇게 시작하겠다”는 표시 같은 거예요. 누군가는 그 표시를 가족과 함께 하고, 누군가는 혼자 조용히 하겠죠. 어떤 방식이든, 그게 내 마음을 조금 편하게 해준다면 충분합니다.
사람마다 달라요. 어떤 집은 떡국이 있어야 “아, 설이다” 싶고, 어떤 집은 그냥 가족이 모인 것만으로도 설날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떡국은 그 느낌을 아주 빠르게 만들어주는 편이긴 하죠.
제도는 바뀌어도 말은 오래 남습니다. 특히 명절처럼 감정이 얽힌 날엔, 어릴 때 듣던 말이 그대로 다시 올라오는 경우가 많고요.
저는 괜찮다고 봐요. 다만 아이가 부담 느끼지 않게 장난처럼, 그리고 “너도 커가고 있구나” 같은 따뜻한 분위기에서요. 말이 칼이 될 때는 내용보다 ‘톤’이 더 무섭잖아요.
“떡국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는 말은, 국 한 그릇으로 숫자를 올린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설날이라는 문턱을 넘어가는 순간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작은 장치에 가깝습니다.
어떤 해에는 웃기고,
어떤 해에는 짠하고,
어떤 해에는 그냥 조용히 고마운 그 한 그릇.
올해 설날의 떡국은, 부디 마음을 덜 무겁게 만들어주는 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생활 속 표현과 설날 문화의 감각을 바탕으로 풀어쓴 콘텐츠입니다. 집안마다 풍습과 기억은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