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차례(제사)는 왜 지낼까

설날 차례는 왜 지낼까: 밥상 머리에서 만나는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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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차례는 왜 지낼까
— 밥상 머리에서 만나는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

설날 아침이 되면 대한민국 전체가 고소한 기름 냄새로 뒤덮입니다. 전을 부치고 고기를 삶고 떡국을 끓이는 분주한 소리 속에서 우리는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의식을 준비합니다. 바로 차례입니다. 병풍을 치고 지방을 써 붙이고 향을 피우며 절을 올리는 이 과정은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보이지 않는 조상님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드리는 걸까." 단순히 전통이라서일까요. 아니면 복을 받기 위해서일까요. 오늘은 이 당연해 보이는 의식 뒤에 숨겨진 인류학적 공포와 사랑 그리고 생존의 역사를 아주 긴 호흡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설날 아침 정성스럽게 차려진 차례상 앞에서 온 가족이 모여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엄숙하고 따뜻한 모습(16:9)

차례의 기원: 차 한 잔에서 시작된 역사

우리가 흔히 쓰는 '차례'라는 단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차 차(茶) 자에 예식 례(禮) 자를 씁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차를 올리는 예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차례상에 차가 올라가나요. 대부분 술(청주)을 올립니다. 도대체 차는 어디로 갔을까요.

본래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명절이나 제사 때 부처님과 조상님께 차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차는 정신을 맑게 하고 몸을 깨끗하게 하는 신성한 음료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유교가 국교가 되고 차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구하기 쉬운 곡주 즉 술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여전히 '차례'인데 상 위에는 술잔이 올라가 있는 아이러니가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역사적 변천
중국에서 유래된 제사 문화가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우리 고유의 토속 신앙과 결합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늘 신에게 지내는 제사였으나 점차 조상신을 모시는 가정 내 행사로 축소되고 구체화되었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관계는 이어진다

서양의 문화권에서는 죽음이 곧 이별을 의미합니다. 무덤에 꽃을 바치며 추모는 하지만 죽은 자가 다시 돌아와 우리와 밥을 먹는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육체는 사라지지만 혼은 남아서 후손들 곁에 머문다고 믿습니다. 이를 '계빈'이라고 하는데 조상이 완전히 저세상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사람과 똑같이 대우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상의 바탕에는 '효'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듯 돌아가신 후에도 그 정성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즉 차례는 죽은 자를 위한 공포의 의식이 아니라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하고 그들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산 자들의 애틋한 몸부림입니다.

"제사는 죽은 귀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내 생명의 뿌리인 조상을 확인하고 가족의 질서를 세우는 인문학적 행위입니다."

왜 하필 설날 아침인가

기제사(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는 밤에 지내지만 명절 차례는 아침 일찍 지냅니다. 설날은 음력 일월 일일,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첫날입니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성스러운 순간에 나를 존재하게 해 준 조상님께 가장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서일지도 모릅니다.

설날 차례는 기제사와 달리 '축제'의 성격이 강합니다. 기제사가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추모하는 날이라면 설날은 온 가족이 모여 새해의 복을 빌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잔칫날입니다. 조상님도 이 잔치에 빠질 수 없으니 가장 상석에 모시고 떡국을 올리는 것입니다.

차례와 기제사의 차이
  • 기제사 : 돌아가신 날 밤에 지냄. 밥과 국을 올림. 해당 조상님 두 분(고조부모 등)만 모심.
  • 차례 : 명절(설, 추석) 아침에 지냄.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을 올림. 사대 조상님을 한꺼번에 모심.

음식에 담긴 우주의 원리

차례상을 차릴 때 흔히 홍동백서(붉은 것은 동쪽, 흰 것은 서쪽)니 조율이시(대추, 밤, 배, 감)니 하는 복잡한 규칙들을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런 규칙들은 유교 경전인 주자가례에는 나오지 않는, 후대에 만들어진 관습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꽤 흥미롭습니다.

대추는 씨가 하나라 왕을 상징하고 밤은 한 송이에 세 톨이 들어 삼정승을 상징한다는 식의 해석은 자손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기복 신앙이 반영된 것입니다. 또한 땅에 뿌리를 박은 음식(채소)과 하늘을 나는 음식(가금류), 물에 사는 음식(생선)을 골고루 올려 천지인(하늘, 땅, 사람)의 조화를 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가산에 맞게 정성껏'입니다. 없는 형편에 빚을 내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는 것은 예법에도 맞지 않고 조상님도 원하지 않는 일입니다. 제철에 나는 가장 좋은 재료로 깨끗하게 장만하는 정성, 그것이 음식에 담긴 진짜 의미입니다.


귀신은 정말 와서 밥을 먹을까

차례를 지낼 때 방문을 살짝 열어두거나(개문), 술잔에 젓가락을 세 번 톡톡 치는 행위는 조상신의 혼을 부르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잠시 뒤로 물러나 엎드려 있거나 병풍 뒤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조상님이 식사하실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를 '유식'이라고 합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귀신이 와서 물리적으로 음식을 먹고 갈 리는 없습니다. 제사가 끝나도 음식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를 '흠향'한다고 표현합니다. 향기를 드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바치는 정성과 마음 그리고 음식의 따뜻한 김을 드시고 가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상상
영화 '코코'를 보셨나요. 누군가가 기억해 주는 한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처럼, 차례상은 조상님이 우리 곁에 머물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이자 '기억의 의식'일지도 모릅니다.

현대 사회의 갈등: 남겨진 자들의 숙제

이렇게 좋은 의미를 가진 차례가 현대에 와서는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차례 준비는 누군가(주로 며느리)에게는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과거 대가족 사회에서는 온 마을 여자가 모여 함께 준비하는 축제였지만 핵가족화된 지금은 소수가 독박을 쓰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종교적인 이유로 제사를 거부하거나 형식적인 절차에 회의를 느끼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면서 차례 문화는 존폐의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조상님을 기리는 마음은 좋지만 그 과정에서 산 사람이 고통받고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긴다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조상님도 후손들이 밥상머리에서 싸우는 꼴을 보고 싶어 하지는 않으실 테니까요.


차례의 미래: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최근에는 차례 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형식을 대폭 간소화하여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만 올리거나 차례 대신 가족 여행을 가서 간단히 묵념을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온라인으로 차례상을 차리는 '랜선 차례'도 등장했습니다.

성균관에서도 "전 부치느라 고생하지 말라"며 차례상 간소화 권고안을 내놓았습니다. 과일 몇 개와 나물, 술 한 잔이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상 위에 올라가는 음식의 가짓수가 아니라 가족들이 오랜만에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 그 자체입니다.

차례는 죽은 자를 위한 것이지만 결국은 산 자를 위한 의식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확인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다짐하는 시간, 흩어졌던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 그것이 설날 차례가 가진 진짜 힘이 아닐까요. 다음 설날에는 형식의 무게는 조금 내려놓고, 따뜻한 떡국 한 그릇에 담긴 가족의 의미를 더 깊게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 이 글은 한국의 전통적인 차례 문화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나 현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각 가정마다 지내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형식보다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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